어려웠던 미국의 초기 여성 고등교육

청교도들이 영국을 떠나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미지의 땅 아메리카를 향해 떠나온 게 1620년,
그 후 하버드대학은 1636년에, 예일대학은 1701년에 설립되었고,
최초 의과대학은 1765년에 펜실베니아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여성들은 학업의 기회가 거의 없었고, 많은 여성이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게다가 의과대학은 여학생을 받아 주지 않았다.

1847년 뉴욕 주 제네바 의과대학에 여학생(Elizabeth Blackwell)이 지원을 했을 때,
학생들은 당연히 안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
장난삼아 찬성투표를 던진 몇몇 학생들 덕에 여학생이 처음으로 의과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엘리자벳 블랙웰은 수많은 수모를 겪으며 졸업을 하고 미국 최초의 여의사가 되었지만,
사회분위기가 여성을 받아 주지 않아, 공식적 의사로 활동하기가 어려웠다.

1848년 산부인과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처음으로 보스턴에 여자의과대학(Boston Female Medical College)을 설립하였다.
로제타 홀이 졸업한 펜실베니아 여자의과대학은 그 후 2년 뒤인 1850년에 설립이 된다.
펜실베니아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한 여의사들의 상당 수는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박에스더가 졸업한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은 1882년에 세워졌다.
그 후 세 개의 여자의과대학은 모두 남녀공학 종합대학에 편입되었다.

당시에 대학 교육을 받기도 어려웠지만,
1800년대 미국의 전문여성들은 결혼을 하면 아이를 키우며 가사에 전념하여야 했다.
그래서 로제타 홀은 의사가 된 후 결혼을 하지 않고
조선 선교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고,
윌리엄 홀의 청혼을 단호히 거절하고 조선으로 떠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