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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차 정기총회를 맞아 존경하는 동문 여러분! 새싹이 돋아나고 물오른 꽃망울이 사랑스러운 초봄에 마스크를 벗고 여러분을 뵙게 되어 더욱 기쁘고 반갑습니다. 이화의 긴 역사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선배님들과 동창회의 기초를 놓고, 기둥을 세우고, 든든한 발전을 이루신 선배님들 우리의 힘이고 희망인 반짝이는 후배들을 떠 올리며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이화의 정신을 되새겨 봅니다. 긴 시간 동안 코로나19로 발이 묶였지만, 오히려 과거를 돌아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 뒤에 소망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분들의 헌신이 있었음을 배웠습니다. 어느 동창회 어느 학교보다 소중한 우리의 역사를 함께 나누며 자부심도 키우고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향한 우리의 사명을 다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지난..
한국의 새벽기도 이화학당에서 시작 이화에서 시작한 한국의 새벽기도 1904년 9월, 개학을 맞아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은 연합하여 학생부흥회를 열었다. 저녁 집회 때 은혜를 받은 이화학당 학생들이 이른 아침에 예배실에 모여 기도를 했다. 부흥회를 인도한 분은 1903년 8월 원산대부흥을 이끌었던 닥터 로버트 하디 선교사였다. 그 후 1907년 평양대부흥이 일어 나기전 1906년 가을부터 평양장로회신학교 졸업반 학생이었던 길선주가 주도하여 평양에서도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하였다. 그 후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화학당 교사와 학생들은 매일 정오에 '구국기도회'를 열었다.
이화학당장 앨리스 아펜젤러 선교사 1편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는 약혼녀(Ella Dodge)에게 긴 편지를 썼다. 결혼하면 조선에 선교사로 가고 싶은데...... 그리고 둘은 1884년 12월 17일 결혼했다. 1885년 2월 3일, 조선을 향한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때, 부인은 임신 초기였다. 일본에 도착하여 머물다가,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제물포에 도착했을 때, 아펜젤러는 부인에게 먼저 발을 내딛어 조선 땅을 밟게 했다. 조선 도착 7개월 후, 11월 9일에 앨리스가 태어났다. 붉은 곱슬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앨리스는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서양인을 보면, 피하고,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이었지만, 아기를 볼 때의 반응은 달랐다. 게다가 1800년 초부터 외국인들이 조선에 왕래했지만,..
초기 이화학당과 보구녀관 이야기 (1-5화) 제1화 “이제 피부를 이식해야 됩니다.” “네? 내 살을 떼어서요?” 환자가 피부 떼어내는 것을 거부하자, 로제타 셔우드¹ 선생님(로제타)은 본인의 살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본 봉순오마니가 달려와 말렸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이화학당의 말괄량이 봉업은 자신의 살을 떼어주겠다고 나섰다. 로드와일러² 선생님과 벵겔³ 선생님도 자원했다. 그러자 환자가 용기를 냈다. 1890년 11월 11일 오후 2시, 손가락 분리수술을 시작하였다. 3시간에 걸쳐서 손가락을 손바닥으로부터 분리하고 하나씩 부목을 대어 붕대로 감쌌다. 12월에는 화상으로 손바닥에 붙었던 세 개의 손가락에 피부 이식수술을 했다. 마침내 환자는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어 퇴원했다. 로제타가 조선에 도착한지 한 달이 채 안됐을 때였다. 한양에서..
눈앞에 다가온 통일 눈앞에 다가온 통일 지금은 전쟁 중이다. 전 세계는 성역이 없이,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100여 년 전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약1000만 명이상이 전사했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약7000만 명이 희생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인 1918년의 Pandemic, 스페인 독감 때는, 5000만에서 1억 명가량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당시 인구가 16-19억 명이라고 볼 때, 세계인구의 3%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예측되고, 약1200만 인구였던 한국도 14만 명 정도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SARS-CoV-2)는 변수가 더 많아 예측이 안 되지만, 다른 Pandemic과 비교할 때 1년 이상 걸려야 종료될 것 같다. 또 다른 바이러스가 ..
조선 기독교 선교를 압당긴 이수정 선교사 1882.6.9. 일어난 임오군란 때, 구식군대가 민비를 제거하기 위해 창덕궁 돈화문 안으로 난입했을 때, 민비를 충주로 피신시켜 목숨을 구한 공으로, 고종의 신임을 얻은 이수정(1842~1886)은 일본에 갈 기회를 얻게 된다. 그는 친구 안종수(1881 일본 방문)가 소개해 준 일본인 농학자 츠다센( Tsuda Sen 1837~1908)을 만나 기독교인이 되었고, 다음해인 1883년 4월29일, 도쿄 소재의 교회에서 일본인 목사님으로부터 세례를 받는다. 그는 도쿄 외국어학교에서 조선어를 가르치며, 선교사들에게 한글과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일본에 와 있던 조선 유학생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했다. 1883.12.13.에는 미국의 선교잡지(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에 한..
이화 국제 재단 1883년 9월,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열린 여성해외선교부 모임에서 볼드윈 여사는 조선의 여성과 어린이에게 써 달라고 헌금했습니다. 볼드윈 여사의 헌금은 조선에 선교사들을 보내는 동력이 되었고, 특별히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선교사들을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볼드윈 여사가 헌금하던 그 모임의 서기였던 스크랜튼 여사가 조선에 와서 선교를 시작하며, 여학교, 여성병원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고, 그 요청에 응답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이화가 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여성의 고등교육을 위해 대학이 필요함에 확신을 갖고 있었던 룰루 프라이(Lulu Edna Frey ) 당장과 엘리스 아펜젤러 (Alice Rebecca Appenzeller)당장의 굳은 의지와 노력으로 어려운 모든 여건 가운데에 ..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의 삶 박에스더의 삶 1.이화학당 입학 1886년 11월, 이화학당의 다섯 번째 학생으로 스크랜튼 여사를 만났을 때, 김점동(1877.3.16~1910.4.13)은 만 9세였다. 큰 언니는 집을 떠나 시집을 갔고, 둘째 언니는 시집 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동생은 갓 태어났을 때였다. 너무도 낯선 파란 눈의 선생님이 난로 가까이 앉으라고 할 때, 어린 점동은 처음 보는 그 난로 속에 집어넣어질 것 같아 무서웠다. 그 서양 선생님은 정한 뜻을 위해, 사랑으로 헌신하며, 신실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당시 조선 여성들은 생각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삶에 녹아 있는 언어와 생각을 배우며, 점동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개인의 권리가 무엇인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유와..